미진 언니의 블로그에 들어 갈때 마다 보게 되는게 있다. 닉네임: " 깡다구 " 순수열정 작가의 무한 도전 공감한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작업의 과정이 힘들었다. 나 스스로가 만들어논 인물화이어야하고 한국화재료를 써야돼!..라는 스스로에게 묻는 수없는 물음과 대답 속에서 이것이 나만의 정체성을 내세우는 건지.. 무조건적인 아집인지.. 앞으로도 이같은 물음의 벽앞에서 나는 얼마나 당당해 질 수 있을지 놓지 않은 이 붓을 꼭쥐며...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종이를 바라보고 있다.
박미진 작가노트 중...
박미진_Gaze_장지에 중채_각 125×145cm_2007
입김이라도 불면 흩날릴 것만 같은 그림 속에서 박미진 작가는 " 네가 정말로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고 " 라고 묻는다.
난, 네가 정말로 보고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무언지도 모르겠다.
- 이 글은 Disturbed Angel 의 컴퓨터를 수리해준 GoSt 님이 작성한 글이다.
CTFMONNPE.EXE = NoPhishingX Control
컴퓨터를 작업용으로 사용하다 보면, 새로운 프로세서가 실행되거나 하는 것에 민감해 진다. 특히나 사용하지 않는 불필요한 프로그램이 계속해서 컴퓨터 리소스를 잡아 먹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ctfmonnpe.exe 라는 프로세서가 몇일전 눈에 들어 왔다. 신한은행에 접속 하면서 설치된 프로그램 이다.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설치되는 부가 플러그인은 보통 :\WINDOWS\Downloaded Program Files 폴더에 설치 되는데, 노피싱(NoPhishing) 같은 경우 프로그램 추가 삭제 에서도 목록이 보여지고, 삭제도 가능하다. 또, 윈도우 프로그램 목록에도 추가 된다.
하지만, 이것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건, 설치시 자세한 설명이 없고, 기본적으로 시작 프로그램에 자동으로 등록이 되어서 컴퓨터 부팅과 함께 자동 실행 된다. 옵션 메뉴에서 부팅시 자동 실행 채크를 해제 해도, 시작 프로그램 목록에서 삭제 되지 않는다. 또, 신한 은행 사이트에 접속을 하고 난 뒤, 자동으로 실행된 노피싱(NoPhishing) 을 수동으로 꺼도 (은행 사이트를 종료 해도 자동으로 종료되지 않는다.) 실행 프로세서에서는 자동으로 꺼지지 않는다.
은행 사이트를 여러 곳 사용하다 보면, 이런 식으로 설치되는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 실행은 자동으로 되고, 설치시 셋팅 메뉴도 없고, 한번 실행후 컴퓨터 종료 까지 자동으로 꺼지지 않는 프로그램들 때문에 불필요하게 컴퓨터 리소스를 낭비하게 된다. 프로세서 이름을 ctfmonnpe.exe 로 사용 하면서, ctfmon.exe 와 연관된 기본 프로세서인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점도 문제다.
그리고, 수동으로 프로세서 까지 모두 종료 한다 하더라도 익스플로러 사용시 브라우저 부가기능으로 추가 되어 있어서 항상 실행이 된다는 점도 사용자의 편의 보다는 지나치게 노피싱(NoPhishing)에 우선권을 부여하고 있는 점도 악성코드와 유사한 특징이 있다. Disturbed Angel 님의 컴퓨터 같은 경우 IE7 을 사용하고, IE7의 기본 피싱 필터를 사용중인데, 신한은행에 맞춤 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사용자의 환경을 고려해서 필요하지 않는경우 설치하지 않고도 은행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노피싱을 설치하지 않으면 인터넷 뱅킹 업무에 로그인 할 수 없다.)
:: 노피싱(NoPhishing) :: 윈도우 플러그인으로 설치되고, 프로그램 추가제거 목록에 추가 되고, 윈도우 프로그램 목록에도 추가 되고, 실행은 자동, 설치시 셋팅 메뉴 없음, 기본적으론 윈도우 실행과 함께 자동 실행, 실행후 자동으로 꺼지지 않음, 수동으로 종료해도 실행 프로세서는 꺼지지 않음 익스플로러 브라우저 추가기능으로 추가되어 익스플로러 실행시 항상 실행된다.
누군가 내게 어렵고 힘든 이야기를 하며 울먹이고 있다면, 그 벗어나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말해주고, 힘이되도록 할수 있을까? 내게 말을 하는 사람은 위로 받고 싶어 하는 것이다? 단순하게는 이렇게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이게 모두는 아니라고 생각 된다. 위로 받고 싶은 그 사람 이라고 했을때, 나는 몇가지 객관적 통계내에서 사람들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로 지금 어려운 것은 누구나 겪는 것이라던가, 당신이 지늰 더 강력한 에너지를 바라 보라고 말해 줄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 사람은 참 간사해서 이런 식에 단순한 조언을 반복적 학습을 통해 친분을 쌓아가는 방법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이것을 구별해 내는 것은 무의미 하다. 구별해 낸다 하더라고 꼬치꼬치 물어 보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야옹이 한마리가 내 발목을 스쳐지나가며 뭐라도 얻어 먹을 수 있을까~ 하고 친근하고 서글푼 눈으로 올려다 보는 것과 같다고 할수 있겠다. 두 손으로 야옹이를 들어 안고, 스다듬어 준다.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알고 있지만, 야옹이에게는 관용을 아낌없이 배푸는 내가.,. 사람에게는 야옹이처럼 대해주지 못한다. 관계가 맺어지기 이전까지, 친구아닌 사람과 친구인 사람은 같은 사람이 아니다.
거리를 걷는다. 눈에 보이는 몇몇을 뺀 수많은 조형물들은 모두들 아름답고 즐거운 색과 모양으로 가득하다. 그 사이사이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은 웃고 있는 즐거운 모습만 보이는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이 표현되고 붙어 있는 것과 마찮가지로 아름다운 것을 정의하고 생각 한다. 아름답다는 것은 글자로 정의 될 수 없는 무엇이다. 심리학을 전공 했을 법한 사람이라면, 이런 이야기 속에서 내 어릴적 과거를 회상하거나, 내 가족과, 지나온 내 생활을 생각 하며 사회 부적응적 사고방식을 이야기 할지도 모른다. 사회는 이해와 타협만이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름다움의 틀에 속하지 않는 것을 괴이하다거나 특이하다는 느낌으로 말할 수 있다면, 괴이하고 특이한 소수의 틀 안에서는 아름다움 이라는 것이 무의미 할테니 말이다.
몇일전 개인과 사회적 개인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었다. 사회적 개인의 단순화는 아름다움으로 과열된 여러 모습을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림 이야기로 시작해서 미술, 사회 등으로 이야기기 확장 되다 보면, 개인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회가 없다면 개인이 존재할 수 있는가?" " 혼자서 살수 있는가?" 하는 말을 듣게 된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더 어렵다. 아름다움으로 과열된 내 눈과 가슴은,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했고, 느껴야 할 것을 지나쳐 버린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거대한 집단에 단순화 과정일 수록 놓치고 있는 다른 것은 없는 것인지 경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무뚝뚝 하시고, 비관적 사고 방식이 강하시고, 우울증이 있다. 아버지는 무뚝뚝 하시고, 비관적 사고 방식이 강하시고, 다른 사람말을 쉽게 믿고, 사기를 여러번 당하셨고, 고지식 하시고, 구두쇠 시다.
conte on wood
이런 부분은 극단적인 부분만 생각 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겠지만, 어머니와 아버지 둘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이런 극단적인 열성 유전자를 물려 받아 무뚝뚝 하지는 않지만 더 강한 우울증을 지녔고, 사람말을 쉽게 믿으면서도 사기를 당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몇 이전 부터 몸이 좋지 않아서 집에 전화를 하면서 알게된 사실인데, 어머니와 아버지 두분에게서 물려받은 또 하나가 있다. 그것 때문에 몇일째 약기운에 의지하면서 버티고 있다.
여자인 나도 세침한 여자를 경계하고, 단맛을 취하는 무모함을 경계고, 까칠한 것을 싫어하지만 단맛에 향연을 뿌리치지 못하고, 세침과 까칠로 가기도 전에 우울로 빠져 버린다. 외부를 외면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시대적 언어를 익히는 것이, 내 내면에 스스로 상처를 입히는 반복적인 무모함에 빠지는 것보단 쉬울 것을... 어떤 면에서는 세상에 가장 힘든 것은 사람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일 수록 더 만나기 싫어지는 것은 좁디 좁은 내 경험 탓일 지도 모르겠다.
어릴때는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어린 시절엔 죽는 다는 것이 나이들고 병들어 죽는것만 있었다.) 꽃가마를 만들고, 하얀 붕대로 전신을 감싼 시신을 나무 관에 넣어서 꽃가마에 싣어서 두줄로 무리를 이룬 사람들과 함께 어디론가 걸어간다. 꽃가마를 따라는 사람들중 맨앞에 상주들은 "아이고~" 를 연신 외치고, 그 뒤를 따르는 친인척들은 침묵을 지킨다. 그 잠든자에 행렬이 지나간 길을 동네 어른들은 가로질러 건너지 못하게 했다.
어릴때 봤던 "아이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눈물을 흘리지도 않으면서 입으로만 "아이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걸 봤을때 뭔가 이상하다 생각 했었다. 장례식장을 자주 가본건 아니지만, 두번 세번을 가본 장례식장에 모습은 결혼식장에 "우루루" 행렬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남기지 못해 아쉬워 하는 것 같다.
일상에 단절된 흐름, 단절되었다는 의미가 흐를 수 있다는 말자체가 모순이기도 하다. 사회적, 집단적 느낌과 논리로는 개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게 정설이라고 믿게되는 하루다. 의미를 확장하고, 포장하고를 반복하는 사람들에 사회성 때문에라도 사회적단절을 내 스스로 만들어 내고 싶기도 하다. 사회적 활동을 어떻게 하느냐 , 하는 것을 말하기도 전에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 만으로도 좁디좁은 공간속에서 맴돌게 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내 자신을 구속하고, 사람들과 단절되어 가는 것이다.
사회적 소통? 사회적, 사회적, 상대적이기도 하고, 다양성, 쌍방향성을 모두 갖추고 있는 개인을 단순한 사회적 소통 이라는 의미로는 개인에 대한 소통 자체가 무의미 하다. 개인이 사회를 이해해 줄수는 있어도, 사회가 개인을 이해할 수는 없는거 아닌가? 그런데, 기본적 소통이 어려운 개인대 사회의 관계속에 사회적 개인을 만들어 놓고, 그 틀안에서 소통을 생각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단순한 생각이다.
개인에 대한 정의를 말하는 것도 간단하지 않다고 본다. 개인이 개인을 정의 하는 것은 개인적이다. 사회적 의미로 개인을 정의 하는 것은 사회적인 것이라 객관성을 지녔다 할수 있지만, 객관성은 집단적 범위에 속하고, 집단은 개인이 아닌 사회적 개인으로 구성된 것이라 다양성을 담아내기는 어렵다. 개인은 상대적 다양성을 지닌 개인과 상대적 객관성 (단순함) 을 지닌 사회적 개인에 의미에서 ,시작하게 된다.
민수 오빠 아버님께서 몇 시간 전 병환으로 돌아 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일과 작업 모두를 계속 이어가는 모습을 내게 작업에 대한 의지와 열정을 보여 주며 개인적으론 힘이 되었던 민수 오빠다. 아버님이 병환으로 쓰러지실때 부터 걱정 하던 오빠에 얼굴이 떠오른다... 아버님에 빈자리로 힘들어할 민수 오빠에 모습도 떠오른다. 내일 혜선언니와 함께 가보기로 했다.
오늘 산울림 소극장에 가면서 민수오빠 작업실에도 들를까 했었는데, 오늘은 외출을 하지 말아야 겠다.
café Suッkara _ 홍대후문앞 산울림 소극장 _ sweet hours 김인숙 개인전 전시 홍대근처로 나갈 일이 생겼는데, 마침 적당한 곳 산울림 소극장 에서 안면 있는 분이 전시를 한다. 작업을 아직 본적은 없지만, 지난번 민수오빠에 결혼식때 만난적이 있어서, 나간김에 한번 들러볼 생각이다. 검은 저고리를 입고 있는 사진은 머리에 꼽은 빨간 꽃이 상상 되는데, 산울림 소극장 전시장내에 작품속에 그 빨간 꽃이 가슴에 꽂혀 있다.
금방이라도 북쪽 사투리가 들려올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상상을 꾸~욱 억누르고 있는듯한 그런 느낌...
기간중의 이벤트 4.28(Sat.) 11:00~12:00 ■ work shop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우리학교를 함께 느껴보세요. ※ 참가를 원하시는 분은 예약이 필요합니다. cafe suッkara (cafesukkara@hotmail.com)에게 미리 연락해주십시오.
4.28(Sat.) 14:00~18:00 ■ free market 수입금으로 우리학교에 책을 기부하는 프리마켓이 카페 2층에서 열립니다.
■ Kim In Sook 1978년 오사카태생. 오사카에서 사진활동을 한 뒤 2003년부터 서울로 거점을 옮겨 일본과 서울을 왕래하며 사진을 찍는다. 이번 전시는 오사카의 우리학교(민족학교) 출신인 작가가 카메라에 담은 우리학교 아이들의 모습이다.
이 작가는 한국 (북한과 남한 모두를 말하는 것이다.) 을 많이 사랑한다고 한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 나도 마찮가지로 우리 조국에 대한 애틋함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일본에서 생활하는 동포들은 조국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아주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작가도 굳이 서울로 들어와 사진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인가 보다. 나는 아직, 그런 애틋함을 조국에게 느끼지는 못했다. 오랜 기간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에게서도 그런 말을 듣지는 못했다. 애틋함 보다는 만나고 싶은 사람, 먹고싶은 음식, 이런 말들은 들었어도...
결국> 산울림 소극장에 나가지 못했다. 이 포스팅을 하고나서 바로 한통의 전화가 와서 장례식장에 가야할 일이 생겼다.
급하게 포트폴리오를 출력해야 하는 일이 있을때마다 충무로 킹코스에 가서 장당 1000원 정도에 출력을 하고 있다. 집에서는 A3 를 출력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장에 1000원, 조금 두꺼운 종이는 장당 2000원까지 들더라도 어쩔 수 없이 그가격에 해야한다. 작년 부터 A3 까지 출력할 수 있는 프린터를 하나 사고 싶었는데, 아직도 사지 못하고 있다. 선배에 작업실에 놀러 갔다가 본 프린터가 생각 나서 검색을 해 봤더니, 이 모델인지는 모르겠고, 충분히 좋은 출력물을 만들어 준다는 찬사(?) 를 받고 있는 모델이 눈에 들어 왔다. 나 같은 경우엔 사진을 주 작업으로 하는건 아니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 만큼 포트폴리오나 도록 디자인을 해보고 싶기도 해서, 언젠간 이모델을 꼭 사고 싶다.
일단 찜이다. 언제 살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돈을 모으기도 좀 그렇다. 재료비를 충당해야 하는 것도 빠듯한데, 110만원대에 프린터를 사려고 몇달치 재료비를 아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재료를 사야 했는데, 돈이 좀 모자라서 포인트로 구매를 했다. 그동안 호미화방에서 재료를 구매 하면서 십여만원 어치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가 쌓였었다. 물건을 사오면서 모을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나중에 돈 떨어지면 쓸 수 있는 비상금이다~ 생각하고 당장, 사면서 몇천원씩이라도 할인 받을 수 있는걸 참아가면서 모아온걸 쓰고 나니, 이번엔 뭔가 공짜로 얻어온 기분이면서도, 다음을 생각하니 아까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서울에는 내 눈에 보인 것으론, 강남에 있는 한가람 문구와 강북 홍대앞에 있는 호미화방 두개에 재료상이 가장 크다고 생각 된다. 아니, 한곳이 더 있다. 남대문에 알파문구...
내가 즐겨 가는 곳은 호미화방이다. 거리로 볼때는 남대문 알파문구가 더 가깝지만, 호미화방과 별 차이가 없고, 한가람 문구나 알파문구에 비해 호미화방은 모든 제품이 가격이 붙어 있어서 재료구매를 하는데 있어서 더 편하다. 그래서 대량 구매를 하는 경우엔 대부분 호미화방을 이용하고 있다. 대량 구매라고 해봐야 내 나름대로에 대량 이지만 ...
남대문에 알파 문구 같은 경우 내가 직접 겪지는 못했지만, 직원들이 너무 불친절 하다는 생각이 든다. 매장 내부에 있는 TV 를 보면서 손님이 질문을 해도 TV로 눈을 두고 건성으로 대답하는 것이나, 껌을 씹고 있는 직원들이 많은 것이나, 한번은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 앞에서 줄을 서 있었는데, 내 앞에 사람이 구매한 물품 영수증을 끊어 오지 않고 계산대에 온것을 (남대문 알파문구는 물건을 사서 영수증을 끊어 정산해주는 카운터가 따로있고, 그 받은 영수증을 가지고 계산을 하는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게 되어 있다. ) 여직원이 듣고 있기 민망할 정도로 쏘아 부치는데, 처음온 사람이라면 알파에선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텐데, 설명을 해주지는 않고, 무조건 가라고 쏘아 부치는게 그냥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나빠지는 경험이었다.
미술 재료는 재조사나 국가에 따라서 가격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사용하는 재료를 정했더라도 재품에 상세한 정보를 모르면 자기가 원하는 재료를 구매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단순히 비싸다고, 또는 이름있는 회사 라고 해도 내가 원하는 색이나 질감 같은 특징을 그대로 표현해 주지는 않기 때문에, 콘테 한가지를 원하더라도 여러 종류를 사용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나 유화 같은 경우엔 수입산중에 워낙 비싼 것들이 있어서 무조건 비싼것만 찾다가는 쓰지도 못하고 굳혀갈 수도 있고 말이다. 첫 전시때는 화판을 캔버스를 택하지 않으면서 천을 다량 구매 했었다. 그 천 대부분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천에 따른 마감을 찾아내야 했던 것이 그림을 기리면서도 신경을 쓰며 고민 하기도 했었다. 그 고민들 때문에 다른 재료를 또 사용해 볼 수 있었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 있어 작업에 영향을 미치는 비용이 생각 했던 것 보다 더 많이 들이게 되는 것이 또다른 고민이 되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림만 생각 해도 안되고, 재료만 생각 해도 안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써야할 재료를 쓰지 못하는 것을 따르는 것도, 아직 나는 하지 못하겠다.
샴비 목욕을 시켜야 했지만, 귀찮다는 이유로 하지 않았다. 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에 샴비 산책도 시켜 주고 저녁요리를 하는 사이 방에 가둬 놨더니 신경질이 났는지 책장에 올려둔 나무 인형 하나에게 해코지를 했다. 떨어뜨려서 다리가 하나 부러 졌는데, 부러진 다리 한쪽이 사라 졌다. 어느 구석에 들어가서 보이지 않는건가 하고 구석구석 찾아 봤지만, 쓸고~닦고 해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샴비가 먹은 것이라 믿고, 나도 녀석에게 해코지를 해줬다.
불쌍한 깜장치마
한쪽 다리를 샴비에게 먹힌 깜장 치마에게는 의족을 하나 만들어 줄 생각이다.
나는, 애묘인은 아니다. 애묘인이라기 보다는 동거인으로 서로 해코지를 하며 지내는 사이라는게 더 적절하다고 생각 된다.
화장실에 앉아 낙서를 하든, 크로키를 하건, 손이 쉴 시간을 주면 그만큼 마음도 굳어지게 되는것 같다. 이런 드로잉들은 보통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작품성이 첨부되거나, 완성도나 힘이 가득한 드로잉이 아니라면 말이다. 내게도 흥이 들지 않는 드로잉이다. 드로잉을 많이 하지 않다 보니, 마음이 점점 굳어가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은 마구잡이다. 인형도 꿔매고, 드로잉 첩도 들척이고,
요즘은 그렇게 우울하지 않다. 지금은 내가 할수 있는 일들을 하기 때문인듯 하다. 우울증이 오고 가고 하는 것을 내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지만, 수영이나 헬스, 요가 같은 몸을 움직이는 운동을 하는 중에도 우울증은 잘 사라지지 않았었다. 예전에는 그림을 그리는 것 이외에는 취미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당장 돈이 없어서 그림을 못그리거나 사고 싶은게 있어도 살수 없느 것이 속상하거나 했는데, 지금은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할 수 있단느 것에 만족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배웠다기 하긴 딱딱한 느낌이지만, 작년 치마에 대한 전시기획을 하면서 미싱과 바느질이 늘어 나면서 자연 스럽게 인형을 만들게 됐던 것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얼마전 부터 7개에 인형을 만들고 있는데, 손과 발 숫자를 잘 못 세어서 한녀석은 손과 발을 달지 못하게 된다. 그냥 손,발 한쌍씩을 만들어도 되지만, 이유있는 개성이 나올 것 같아 달지 않기로 했다.
손,발이 달리지 않을 녀석을 골랐는데, 위에 녀석은 아니다. 사실, 4월 들어서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도 인형 만들기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