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3일 새벽

가로,세로 260×194cm 작업을 시작하다.

내 안에 다양한 성격의 자아들을 이 전에도 표현해 왔었는데, 대부분이 단편적인 인물 하나를 통해서 내 자아의 감정들을 표현해 왔다.
사이즈로 보면 120호 작업이 되는데, 이 화판에 등장하는 두 소녀는 쌍둥이 같기도 하고, 자매 같기도 하다. 한 인간속에 내재해 있는 자아 일수도 있다. 둘이 함께 등장하는 것이다.
거추장 스러운 머리카락을 손으로 움켜쥔다.
한소녀가 한쪽 손으로 다른 소녀의 손을 잡고 있고, 다른 손으론 꼬리를 잡고 있다.
한 공간에 머물어 있어서 인지 소녀의 머리카락은 길게 늘어져 바닦에 먼지가 내려 굳어지듯이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시선없는 눈동자!

벗어날 수 없는 관계,

대립되지만 붙어 있을 수 밖에 없는 관계, 이 작업이 들어가기 전 부터 고민이 많아서 인지, 하루 반은 빈 화판 그대로 두어야 했다.
지금은 12월 5일 새벽, 아직 한점의 콘테 가루도 붙어 있지않다.

이순간이 가장 좋다.
콘테가 들어가기 바로 직전, 불분명한 선들이 콘테가 쌓이길 기대하며 분명해질 단계적 완성체를 상상하게 될 기대감이 남아 있는 순간!

작업이 편안한 순간이고, 이유 없는 고양이의 행동 처럼 어떤 이유도 남아있지 않은 순간이다.
December 24th, 1978 ~ March 29th, 2007
http://eironeia.net
이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본다.

불안 바이러스 작업에 지난 3월 10일 답변을 주셨던 eiron 님의 블로그에는 답변글 다음으로
아래 짧은 문장 두줄이 마지막으로 남겨져 있다.
http://eironeia.net
eiron님은 불안 바이러스에 limit 라는 말을 전해 주었다.
"불안이야 말로 우리르 존재답게 하고, 찰나의 순간을 함껏 살아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http://eironeia.net

불안 바이러스에 답변을 주었던 몇몇 블로거분들은 블로그 접속이 되지 않고 있어서, eiron님도 블로그를
접었구나~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혹시 다른 곳 링크를 알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지막 글에 달린 덧글을 열어보고...

쓸쓸해 졌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어떤이가 남긴 이 말은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eiron 님은 아직 젊은 분으로 알고 있는데,
생의 모든 것이 의문이라는 말, 그말에 시간의 무게감이 느껴졌던 답변에 아직 내 이야기를 남겨지
못했는데,
아침이 오는 근처에서 eiron 님 블로그를 보며 한동안 시간이 멈춘듯한 적막감을 느꼈다.
아무 소리도, 느낌도 없이 내 시선은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불안 바이러스-불안한 태그 작업을 위한 몇몇 구상을 시도하려고 한다.
Anxiety virus:: (불안 바이러스) - 당신의 불안을 태그로 표현 한다면 ,이 포스팅으로 트랙백으로 태그를 보내준 분들, 메일과 덧글로 남겨준 분들 개개인에게 내 트랙백을 한개씩 보내는 작업이 첫 단계다.

어느날 갑자기 트랙백을 받게 된다고 해서 놀라지 말길 바래요~~ 모두들...

트랙백을 더이상 받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남은 기간은 대충잡아 2년뒤 2009년 여름 정도 까지로
생각 하고 있다.
도데체 사람들의 반응을 받아서 뭘 할려고 하는 거냐? 이 질문을 종종 듣게 되는데...
불안 바이러스 이야기를 하며 말했듯이, 우선은 내 이야기이고 나 혼자서는 할수 없는 이야기를
타인과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을, 그리고 ... 이것은 평범한 것이다 는걸 말하고 싶다.
핵심적인 부분은 그렇다.
그 표현이 그림과 사물, 그리고 기획된 모습일 것이다.

공개적이면서도 시각적으론 보여지지 못한 것이라 느낌만을 전하다 보니, 알수없는 무엇이 되어 가기도
한다. 알수 없는 무엇, 그리고 그것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는 나무 인형을 깎는다 말했고, 완성체를 상상하는 당신은 상상될 수 없었다.
일상에 단절된 흐름,
단절되었다는 의미가 흐를 수 있다는 말자체가 모순이기도 하다.
사회적, 집단적 느낌과 논리로는 개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게 정설이라고 믿게되는 하루다.
의미를 확장하고, 포장하고를 반복하는 사람들에 사회성 때문에라도 사회적단절을 내 스스로
만들어 내고 싶기도 하다.
사회적 활동을 어떻게 하느냐 , 하는 것을 말하기도 전에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 만으로도
좁디좁은 공간속에서 맴돌게 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내 자신을 구속하고, 사람들과 단절되어 가는 것이다.

사회적 소통? 사회적, 사회적,
상대적이기도 하고, 다양성, 쌍방향성을 모두 갖추고 있는 개인을 단순한 사회적 소통 이라는
의미로는 개인에 대한 소통 자체가 무의미 하다.
개인이 사회를 이해해 줄수는 있어도, 사회가 개인을 이해할 수는 없는거 아닌가?
그런데, 기본적 소통이 어려운 개인대 사회의 관계속에 사회적 개인을 만들어 놓고, 그 틀안에서
소통을 생각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단순한 생각이다.

개인에 대한 정의를 말하는 것도 간단하지 않다고 본다.
개인이 개인을 정의 하는 것은 개인적이다.
사회적 의미로 개인을 정의 하는 것은 사회적인 것이라 객관성을 지녔다 할수 있지만, 객관성은
집단적 범위에 속하고, 집단은 개인이 아닌 사회적 개인으로 구성된 것이라 다양성을 담아내기는
어렵다.
개인은 상대적 다양성을 지닌 개인상대적 객관성 (단순함) 을 지닌 사회적 개인에 의미에서
,시작하게 된다.

개인과 사회적 개인


Work post

::당신의 불안을 태그로 표현 한다면:: 이라고 블로그에 글을 달아 둔 것은,
블로그로 접근이 가능한 사람들에게 태그 라는 텍스트 만을 모으기 위한 작업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위한, 메세지를 남기는 것이다.
내가 뭔저 남기던, 누군가 내게 뭔저 전하던...
왜 태그를 남겨 달라고 했을까? 이 태그로 작업을 한다면, 어떤 분이 말씀 하신것 처럼
태그라는 텍스트는 오프라인 상에서 태그의 유기적인 부분을 표현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것이 있었다.
오늘 사랑이란 단어는 불안과 고통을 표현하고 있을 수 있지만, 내일은 사랑은 가슴뜨겁고
자그러움을 이야기 하고 있을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아닌 같은 사람에게서...

불안은 고립되 있고, 통로가 없다.
태그를 통해 블로거들에게서 받아 들이는 것은 텍스트 만이 아니다.
받아 들일 수 있는 너그럽고 안정적인 내가 아지지만,
즉흥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건내 받은 나는 그들에게 또 다른 느낌을 찾아 볼 것이다.
이건 무조건 공감한다는 것이 아니다.

편하게 생각한다.
내가 표현하는 텍스트로써의 이미지들을 다시 이곳과 그들에 공간에서 표현되어 질
느낌,
"내 공간과, 또 다른 공간에서 표현되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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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좀 정리해야 하는데, 마땅한 텍스트가 생각 나지 않는다.
질문에 반복이라고 해야 할까?
찾아 돌아 다녀야 할 일들이 점점 늘어만 가고,(점점발전소?)
기획한 생각을 좀 정리해야 시작이든 뭐든 할텐데, 자세히 적으면 읽기 싫어질 만큼 길어지고
생략하자니 너무 가벼워 보이고...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려는 것이다.
나는, 그리고 당신은...
내가 평범한 선에 있는 것인지, 혹시 내가 이상한게 아닌지 질문하고,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싶어진다.
이, 이상하게 생각될만한 덩어리들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지는 것이다.

질문을 할 것이다.
무작위? 아니면 선택?
몇개월 한가지 질문을 들고 다닌다면, 내가 얻게되는 것은 태그 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든다.
각자를 부분적으로 대표하는 태그를 blogger 들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태그를 달것인가?
당신에 텍스트, 그리고 나에 이미지는 같은 것일까?
올해 전시에 대한 고민은 아직 크게 하지 않고 있다.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고 봐야 한다.
작년 전시를 마치면서 아쉬웠던 부분들은 작품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나
완성된 작품에서 보다는 전시장에 설치된 이후에 더 컸다.
" 아무도 모른다 " 이후 EGO 라는 사탕을 물다 에서 바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이 생각 하는 기준이라는 것은 단순히 어떤 사물에 국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였다.
같은 사물이라 하더라도 시간, 공간 또는 그 어떤 것 들 때문에 외곡되거나
변형되는 것 같다.
아니, 그렇다고 봐야 한다.

내가 나를 구속하고 힘들게 하는 것 처럼...

사물이, 그림들이 시간이나 공간에 스스로 변형되는 과정을 생각하기 보다는
내가 맞춰진 틀안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 하게 된다.

조기 치료는 완쾌가 가능하고, 재발 가능성도 크다.

외토리... 아무 짓이든 용서 받는다.
순수회화 로서 말이다..
Work post
블로그가 웹상에서 편집되고 보여지는 공간이다 보니, 확장된 일기장 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일기장은 언젠가 불확실한 누군가에게 보여질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쓰여진다는 말이
있다. 어린 시절 일기장을 쓸때, "아무도 이걸 볼 순 없어~!" 하는 생각만을 지늬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미래에 내가 이 일기장을 보게 된다면, 까마득히 잊고 있던, (오늘에 기억들을
기억해 내려 해도 도무지 기억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그땐 이미 난, 타인으로써
내 일기장을 보는 것과 마찮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블로그에 글을 쓸때 어휘 선택을 어떻게 , 인칭은? 등등 생각하곤 한다.

내가 블로그를 이용하는 범위는 사생활에 일부분에 대한 공간이고, 이 공간은 절대적으로
나만에 공간이 아닌 것이 된다.
개인을 정의하려 하는 것이 사회, 집단에 지독한 버릇인 것처럼. 블로그;블로거를 정의 하려는
것이 또 사회적 논리로 개인인 블로거를 일정한 틀로 구속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림을 볼때 제목을 보고 나서야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것처럼, 알수없는 것... 대체로
많은 것들에 정의를 원한다.
개인을 정의 내릴 수 있는 것, 내 자신을 뭐라 말하는 것을 내 자신도 믿어야 한다면, 그 말은 세상과
나를 창조해내신 분의 말이어야만 한다. 정의내린다는 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없기 때문이다.
블로거;개인으로 이 블로그를 사용하는 나는, 이 쌍방향적 소통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을
전시를 기획하고, 전시장에서 관객과 그림으로, 작가로 소통에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것과 같다.
내게 있어선 말이다...!

그러면서도 블로그는 전시가 이뤄지는 전시장 보다는 가볍고, 안정적이고, 홀가분 하다.
누가 와도 뭐라 하지 않고, 숨어서 올 수도 있고,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가벼운 덧글을 남겨도 뭐라 하는 사람도 없다.
나이드신 작가님들 부터 젊은 작가분들 모두 작품활동에 대한 소통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 하고 있다. 미술은 기본적으로 소통성에 대해 진지해야 한다.
그걸 충족할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일이 전시장을 통한 관객과에 대화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작가들이 이 대화에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그렇듯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림에 대해서 흔히, 또는 작가에 대해서, "이 작가는 이런 그림이다." 하는 정의를 내리게 된다.
어떻게 보면 작가 스스로도 자신에 그림에 대한 정의를 처음 부터 설정해 놓고 시작을 하는 경향이
있는 지도 모른다.

내가 많은 부분 고민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지금에 그림을 어떤 식으로 정의 내릴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정의를 내릴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고민들이다.

작년 전시를 통하면서, 난 고양이 그림을 그리는 작가 라는 호칭이 붙었다.
엄밀히 말하면 고양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보는 사람들에겐 기준으로 삼을 정의가 필요하다.
기준이 있어야 옆으로든 앞뒤로든 나열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확실히 내겐 아직 기준을 두고 싶지 않다. 내 스스로는...
블로그 메인에 적혀 있는 것 처럼 난,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 이런 상태에선 내 스스로 정의 내릴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전시장은 준비되고, 자로 그은듯 기획된 공간 이라면
이곳 블로그에선 모든 그림은 아닐 지라도, 일상에서의 흔한 드로잉들까지도 공개하는 장소다.
모든 사람들이 노트에 끄적끄적 해봤음 직한 그런 그림들까지도 ...
블로그를 통하는 쌍방성에 진화하는 블로그인들을 만나며 나 또한 진화할 수 있는 소통을 만들어갈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일러스트와 회화에 경계에 대해선 회화작가들은 주의해야 한다... 라고 한다.

- 흔히 말하기는 일러스트는 목적성이 있다고 한다. 풀어 말하면 상업적 미술 이라는 것이다.
그에 반해 회화는 개인적이다. 작가의 표현기법이나 내면드로잉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업적이기 어렵다.
일러스트는 단순히 상업적이기만 하면 그 의미가 통하는 것은 아니다. 상업 미술안에 일러스트가
있다면 순수미술 속에서도 역시 일러스트적 기법을 사용하는 회화가 있다.
작가들이 원하는 대중과의 소통에 대한 필요는 순수미술속의 일러스트 속에선 처음 부터
의미없는 것이다.

재미 있기 때문이다.

미술속에 만화적 작업을 하는 작가들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 현대미술 이듯이, 일러스트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대중과의 쌍방향적 소통성과 스토리텔링이다.
미술은 회화나 일러스트, 만화 같은 틀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그 틀에 대부분은 관찰자에 편의로 만들어 지는 것이지만
작가에 의도를 해하는 경우도 있다.

2006년을 몇일 남겨두지 않은 지금, 마침 휴일이기도 (크리스마스는 감정적 느낌 보다는 휴일이라는 딱딱한 생각이 앞선다.) 한 오늘 지난 시간을 정리해 둘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멀리 바라 볼 수 있는 생각과 지혜를 지늬지 못한 나 이기에 조금 짧은 내년을 생각하고, 전시와 그림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봐야한다.

올해 전시를 하며 사람들을 만나며 느낄 수 있었던건, 그림은 단순히 그림만 그려서는 그걸 바라봐 주는 것 만은 아니라는 것이였다.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들에 대부분은 알 수 없는 것은 피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알수 없는 것은 어차피 내 개인적인 부분이다보니,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들을 모두 읽거나 굳이 찾아 보는 것은
귀찮아 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렇다.
그리고, 사람들은 편의상 구분되고 설명된 것을 원한다.
아마도 알 수 없는 개인적인 것을 피하려는 경향 때문인 듯 하다.
첫 전시 부터 일부 사람들은 나를 고양이 작가라고 부르는 것, (재미 있었다. ^^) 갤러리에 있으면서 사람들에게
샴비를 보여 줬기 때문이 아니라, 고양이로 형상화된 내 EGO 를 고양이로 단정지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건 나쁘다고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 스러운 것이다.
나 또한 여러가지 것들을 내 편의대로 구분하고 단정 짓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분된다는 것은 개인적인 경향이 크다.
또 다른 제 3자,4자 관찰자들 , 물론 사람들이겠지만 , 이
이런 구분된 틀을 접하게 되면, 프로그램에 생각지 못한 버그가 생기는 것 같이
기본적인 소통성을 가로막는 벽이 되기도 한다.
회화나 일러스트, 만화 이 모두는 그리는 것이다.
그리는 것이라는 기본적인 생각만으로 접하는 것과 세가지 구분된 생각으로 접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성유진의 진행중인 공개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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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하거나,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에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선택권이 주어 졌을때는 너무 많이 우회해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은 직접적인 결정이
아니였음에도
선택이 틀려서 수정이 필요하게 되면, 선택했다는 것에 또 불만을 느낀다.

불안한 심리는 절름발이를 더더욱 갈팡질팡하게 만든다.
그리고 절대적인 모순으로 가득 채워 버린다.
항상 반복되는 룰이라고 하는데, 내 자신은 알지 못한다.
고스트는 내게 이런 말을 전해 준다.
"여기 단순히 그려진 것 같은 그림이 항상 반복되는 룰과 같은 것이다.
저 절름 발이는 스스로를 묶어서 끌고, 산책을 나가려고 한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건 절름 발이도 묶은 자신도 아니다. 아무도 나갈 수 없다.
이게 당신이 갖고 있는 구속과 틀이다.
당신이 피곤하고 불안해 해야 하는 이유다. "

얼마 있으면 올해를 정리 하고 새해를 맞아야 한다.
내가 정리해야 할 올 한해는 "아무도 모르게 EGO 라는 사탕을 물고 불안한 외출을" 한
내 자신이다.
외출을 하고 난 어떻게 돌아 올것인지, 아니면 돌아오지 않고 더 거닐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자신을 부정하고, 자신을 긍정하길 반복하다 보면 새로운 것들이 표현되는데
그 과정은 힘겹지만 그 과정 이후에 얻는 힘이 너무나 크다.
나는 이 과정을 작업을 통해서 반복하고 내 그림과 대화를 하게 된다.
그림들을 포장하느라 천장과 옷장위 그리고 수납장 위에 올려둔 노트들과 캔버스들을 꺼내서
정리를 했다
나는 몇장에 그림을 그렸을까~?
아니~ 그렇게는 알수도 알기도 힘들고...
1년에 몇개에 그림을 그릴까?
또 그림에 기준은 ?
완성작에 기준에 두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크기? 아니면 드로잉북에 그린 그림들을...
년도에 기준을 삼기는 힘들지만..
그림에 집중했던 2004년과 2005년... 그리고 2006년 그림들을 단순히 숫자로 해보니...
일년에 3000개 조금 넘게 그려 왔다..
올해에는 아직 반이 다 지나지 않은 시점에 1000개도 그리지 못했고...
올해안에 2000개 이상을 그려야 한다..
그래야 3000이라는 평균치를 따라 갈 수 있게 된다...
머리 아푸다...
옥상에서 그림을 그렸다.
불을 켜두고 , 밖에서 들리는 떠돌이 고양이에 울부짖는 소리.. 조용히 들리는 사람들 소리를 들으며
조금은 찬 기운에 몸이 움추러 들어서 인지
내 그림도 움추리려 하고 있었다. 결국엔 그렇게 되고 말았지만
아무도 모르는 내 이야기 라는 주제는 적당했던 것 같다.
뭐 어차피 내 마음대로 만들어 버리긴 했지만,
주제 조차 의미 없었을 복잡한 그림 보다는
이번엔 조금이라도 통일된 그림이 나올 수 있었던게 긍정적인 듯 하다

마돈나에 2005년 곡을 들었는데 이전 곡이 조금더 좋았었던듯 하다

샴비녀석은 내가 나가 있었던 것이 못마땅 했는지, 투정을 부리고...췟~
컴퓨터 열을 식히고 있는 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화장실에 따라 들어오려고
칭얼 거리기도 하고...

이젠 자야지~

참~! 지금 보니, 어제 방문자가 507명이나 된다...@.@...
이상하네~ 내 블러그에 그렇게 접속횟수가 올라갈 일이 없는데..... 댓글이 달리는 거 봐도..
지금까지 방문자수를 눈여겨 보지 않았었는데, 평균 50여번 , 일주일에 한두번은 이상하게 2~3백 단위,
그런데 어젠 500 단위다... 왜일까?
올블러그 때문인가. ??
언젠가 커다란 떡밥이 자라는 나의 별로 돌아
갈수 있을꺼야 ? 그치 냥이야 ?

"야~앙"
미친듯이 그릴 수 있는 사람들은,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 이겠지~
분명 그럴꺼다
행복하기 위해선 여러 가지, 내가 필요로 하는것들이 있어야 겠지만,
그 필요한 것들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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